좋은 시 추천 - 오세영 '티비를 켜며'

 

 

티비를 켜며

 

 

리모컨으로 티비를 켜며

물질도 사랑 없인 살 수 없음을

문득 깨달아 알았나니

그의 간절한 소망에 감응하여

갑자기 살아 숨쉬는 무쇳덩어리,

티비는

오늘 하루의 행복을 화사하게 열고 있구나.

관능은 접촉에서 일고

사랑은 마음에서 얻어지는 법,

내 오늘 리모컨으로 티비를 켜며

물질도 마음 없이 살 수 없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나니.

 

 

- 오세영 -

by 은하계맘s 2015. 3. 28. 14:06

좋은시 추천 ㅡ 오세영 '슈퍼마켓'

 

슈퍼마켓

 

우주가 여기 있구나

삼라만상 두두물물

없는 것 없다.

심지어 하늘 높이 매달린 태양,

그 휘황한 조명 아래

모든 사물들 각자 제자리를 지킨다.

여기는 들인가,

꽃에서 곡식, 채소까지.....

여기는 산인가,

나무에서부터 돌, 쇠붙이까지......

여기는 바다인가,

어류에서부터 조개, 진주까지......

일사불란,

그러나 아무것도 살아있는 것은 없구나.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랴,

가격에 따라

A코너 B코너 C코너......

A좌대 B좌대 C좌대......

가로 세로

금 안의 공간에 놓인 사물들은

단지 하나의 숫자일뿐.

산을 보아라,

숲과 새와 짐승과 바위가 어디

금을 긋고 살던가.

지구 최후의 날,

이성만 남고

인간이 죽어버린 이 세계를 나는 오늘 문득

여기서 본다.

 

 

-오세영-

by 은하계맘s 2015. 3. 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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